본문 바로가기
농장일기/농장일기(2011년 이전)

애타는 농부의 마음을 알것만 같다

by 늙은여우한마리 2011. 8. 14.
2006년 7월 15일

태풍 에위니아가 남부지방과 강원도에 엄청난 피해를 주긴 했지만, 포천 농장은 우려속에서도 무사히 농장을 비켜간 듯 했다.
아파트 위에서 내려다본 집앞 주말농장의 모습은 태풍과는 전혀 무관한 모습이었기에 포천 농장도 안심할수 있지 않은가 싶었다.

그러나 이번 장마비는 중부지방에 엄청난 비를 몰고와서 곳곳에서는 물난리와 이재민들로 연일 아우성이었다.
농장이 멀리 있는 관계로 매일 가슴만 졸일수 밖에 없었다가 토요일 비속에도 농장으로 갔다.
포천으로 가는 도로 곳곳에서는 간간히 장마의 피해만 보일뿐 괜찮은듯 보였다.
그것이 안도할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포천 농장에 도착한 순간 지금까지의 우려와 안도는 한숨 섞인 실망으로 변해있었다.

개울은 그 동안 내린비로 인해 짙은 황토물을 무서운 기세로 상류로 부터 하류로 밀쳐내고 있었고, 개울변에 심어둔 호박은 이미 자취를 감춘지 오래 된 듯 했다.

이제 수확을 얼마 남기지 않은 옥수수는 그 큰 키가 어디로 갔는지 땅에 엎어져 일어날 줄 모르고, 고춧대는 바람에 부러져서 고추의 무게를 지탱하지 못한 채 고추를 땅에 쳐박아 두었다.
옥수수 절반, 고추 200 포기중 절반 정도가 땅과 어찌 그리 친한지 마냥 입맞춤에 정신이 없었다.
그 모습을 본 순간 하늘이 캄캄........
그 동안 애써 뿌리고 가꾼 농작물인데 어찌 이럴수가......
하염없이 하늘을 쳐다보았지만 짙게 깔린 구름을 타고 흘러내리는 빗물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농부의 애타는 심정이 이런 것이리라.
땅에 주저않고 싶은 심정.

쓰러진 놈들을 그냥 두기에는 너무도 애처로와 비속에서도 옥수수며 고추를 세워주어야만 했다.
밭에서 개울로 조그만 배수로도 다시 만들고, 새로운 지주대로 고추를 일으켜 세우고...
그러다 보니 온몸은 비로 흠뻑 젖을수 밖에 없었다.

커다란 몸짓을 자랑하며 탐스럽게 익어가던 참외를
비에 어찌될가봐 서둘러 수확을 했는데, 이미 몇개는 녹아 버렸고 싱싱해 보이던 놈들도 여기저기에 상처의 흔적을 내 보였다.
장마비에 수확한 참외가 맛이나 있을련지...
한입 깨물어보니 약간의 단맛이 혀끝을 자극하였다.
'이넘들이 장마를 피해서 자라 주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가 ㅡ.ㅡ'
30 여 덩이 참외를 봉다리 봉다리 주워담으면서 애닯은 마음에 아직 채 여물지 않아 푸르름을 간직한 참외를 멍하니 바라볼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애타는 농부의 마음을 느껴본 하루였다.
어쩌면 지금의 마음은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장마비에 쓰러진 농작물을 보듬고 오열하는 농민의 그 심정을 이제서야 알것 같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