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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장일기/농장일기(2011년 이전)

넘어진 고추를 세우고

by 늙은여우한마리 2011. 8. 14.
2006년 7월 17일

태풍이 지나간 후 곧바로 몰아친 대규모 장마비로 인해 전국은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연일 세차게 내리는 비는 인간이 허용할 수 있는 영역을 훌쩍 넘어선듯 하늘에서 땅으로 굵은 빗줄기를 가져오고 있다.

제헌절.
잠시 주춤해진 터라 농장으로 가서 고추며 옥수수 를 응급 복구하기로 하였다.
오전내내 비가 온 관계로 점심을 먹고 비옷을 주섬주섬 챙겨들고 포천으로 향했다.
주춤해 졌다고는 하지만 그 기세는 꺽이지 않았는지 가끔씩 굵은 장대비를 쏟아내고 있었다.

토요일 넘어진 고추며 옥수수를 대충 묶어주고 지주대를 꼽아둔 상태라서 여간 걱정스럽지 않았다.
농장으로 들어가는 초입에 있는 개울쪽 다리는 세찬 물길과 힘겨운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듯 했다.
비가 주춤했는데도 저러니....
아마도 깊이울 저수지에서 비가 주춤해진 때를 틈타 물을 뺀것이 아닌가 싶었다.

농장에 도착해 보니 대충 묶어둔 옥수수는 버티기가 힘겨운듯 푸르던 잎이 짙은 황토빛으로 바뀌어져 있었다.
넘어지지 않게 지주대만 줄에 걸쳐둔 고추나무는 잘 버텨낸 듯 제대로 서 있어서 그나마 다행스러웠다.

울타리 기둥과 토마토 지주대를 끈으로 묶어서 넘어진 옥수수를 일으켜 세우니 비로 인해 물러진 땅이 토마토 지주대를 들썩거리게 하였다.
에고..
토마토 마저 넘어지면 어쩔가 싶어서 급히 나무를 땅에 박아서 고정을 하긴 했지만 불안하기 그지 없었다.
옥수수는 키가 너무 크고 무게가 있어서 조금만 건드려도 금세 가지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려 세우기가 쉽지 않은터라 대충 세워두는 수 밖에 없었다.

옥수수를 대충 세우고 고추를 새로 박은 지주대와 고정시키려고 하자 잠시 멈췄던 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었다.
비옷을 입었는데도 낡아서 그런지 빗물이 피부를 자극하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지주대와 고추를 잘 묶어서 고정을 시키고 깨끗한 물로 흙으로 범벅이 된 잎과 고추를 씻어 주었다.
넘어진 채로 며칠 밤낮을 보냈을 텐데도 버티고 있어 주어서 무척 고마왔다.

이렇게 나마 응급복구를 할 수 있어서 그나마 천만 다행이었다.
온통 물에 잠겨 밭의 흔적조차 찾기 힘든 농민들도 많은데......
비 피해로 삶의 터전을 잃은 이재민의 빠른 복구를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