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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장일기/농장일기(2011년 이전)

감자들의 산후조리

by 늙은여우한마리 2011. 8. 4.
2006년 6월 24일 ~25일

주말만 되면 비가 오는날이 많았는데, 이번 장마비는 주말농부의 심정을 헤아렸음인지 주중에만 비를 뿌리고 주말이 되어 선 맑은 날씨로 바뀌어 있었다.

토요일.
첫째 녀석의 합기도 공개수업을 참관하고 나서야 밭으로 갈수 있었다.
밭에 도착하니 해는 이미 왕방산 너머로 자취를 감추고 어둠만이 주변을 짙게 감싸고 있었다.
농작물들은 지난주보다 훨씬 더 자라 살그머니 고개를 숙이고 잠잘 준비를 하였다.
가만히 살펴보니 옥수수는 사람의 키를 훌쩍 뛰어 넘을 정도로 커 있었고, 호박은 팔뚝만하게 익어 있었다.

늦은 밤임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와 난 옆집 울타리 근처에서 소복하게 자라고 있는 잡초를 제거 하고 들깨를 심었다.

그러고 보니 시간은 벌써 저녁 12시 가까이.......
에휴~~
시간에 쪼달리는 주말농부의 비애 ㅡ.ㅡ
라면 한그릇을 후다닥 끓여 먹고선 잠을 청하니 좀 처럼 잠은 오지 않고......

그러다 눈을 뜨니 벌써 새벽 6시...
어머니와 아버지는 팥 심을 준비로 분주하고 두 녀석과 애 엄마는 꿈속에서 아직도 헤매고 있었다.

주섬주섬 옷을 걸치고 파 모종을 심을 준비를 햇다.
지난주 배추를 뽑은 자리에 퇴비를 뿌리고 삽으로 뒤집기를 하니 여전히 돌들이 삐죽삐죽 고개를 쳐들고 있었다.
에고...
이넘의 돌들이 언제 다 없어 질려나 ㅠㅠ

오늘은 일이 좀 적으리라는 생각으로 일을 시작했는데, 무더운 날씨가 바쁜 주말농부의 옷깃을 붙잡고 놓아주질 않으니 뜨거운 태양 아래 몸은 축축 늘어지고......

기온이 오르는 낮에는 조금 쉴 요량으로 일의 강약을 조절하고 있는데, 어머니께서 감자밭에서 소리치신다.
감자 줄기가 썩어 들어가고 있으니, 이를 어찌해야 되냐고.....
가만히 보니 지지난주 비로 인해 넘어진 감자줄기를 아버지께서 우왁스럽게 밭으로 넘겨 두었는데, 줄기가 부러져서 썩고 있었다.
아직 감자 캘때가 멀었는데 줄기가 썩고 있으니 할수없이 감자를 캐기로 했다.
올 봄에 다른집보다 일찍 파종을 했으나, 싹이 늦게 올라와서 애를 먹었는데 이제는 썩어 들어가서 애를 태우고 있으니....
파종후 90일 만에 수확을 하게 되는 것인데 어떨지 궁금했다.
호미를 들고 조심스럽게 감자를 캐 보니 만족스러울 만큼 열리지는 않았지만, 우리집에서 먹을것은 수확 - 10kg 심어서 96kg 수확 - 이 된 듯 하였다.
원두막 위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산후조리에 여념이 없는 감자를 보고 있노라니 이제서야 또 한 시름 놓은것 같았다.

배추가 그랬고 이번에는 감자가 그러하니 농사일은 파종 후 싹이나고 수확이 될 때까지 가슴을 졸여야 되는건가보다.
ㅠㅠ

감자밭 옆 수박밭에서는 수박이 어른 주먹만하게 크고 있었다.
지난주에 엄지 손톱 만 하던것이 어느새 그만해 졌다니..
그걸 본 둘째는 빨리 수박을 따서 먹자고 난리가 아니다.
ㅠㅠ
아직 쬐끄만한데 먹긴 뭘 먹어......
이 수박들도 이제 몇주만 있음 훌륭한 먹거리가 될 것 같다.

생각지도 않았던 감자를 캐는 바람에 헐렁하게 일하려는 얼치기 주말농부는 또 다시 시간의 테두리에서 허부적 허부적 거리면서 하루와 씨름했다.
에고..... 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