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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장일기/농장일기(2011년 이전)

올빼미 주말농부

by 늙은여우한마리 2011. 8. 4.
2006년 5월 13일

벌써 여름인가?
봄이 오는 듯 하더니 이내 초여름의 날씨를 보이고 있었다.
아침 저녁으로의 쌀쌀한 기운이 채 봄이 가시지 않음을 느끼게 해 줄 뿐이었다.

일찍 밭으로 가기 위해 꼭두새벽 - 새벽 5시 40분(???) - 에 일어났다.
진짜 농부가 들으면 웃을 일이지만 새벽에 일어나는것은 여간 힘드는 일이 아니다. ㅡ.ㅡ
그러고 보면 난 아침형 인간은 절대로 되지 못할 것 같다.
부시시한 눈을 비비면서 주섬주섬 차에 짐을 옮겨 싣고, 아침 공기를 가르며 시간의 흐름에 몸를 맡겨 두니 어느듯 포천 밭에 도착.

고구마며 배추며 옥수수 등은 얼치기 주말 농부의 솜씨와는 무관한듯 저마다 빼꼼히 얼굴을 내밀며 아침 햇님과 대화하고 있었고, 얼어 죽을까봐 노심초사 애닯아 했던 감자도 제법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대추나무 밑에 자리잡은 땅콩도 이제서야 힘자랑을 하듯이 대지를 밀어 올리며 얼굴을 내밀었다.
작물은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고 했던가?
주인이 오니 반가워서 그리도 이쁜 얼굴을 하고 있는것인가?

아직 채 정비되지 않은 밭이기에 할일이 태산 같다.
밭을 일구면서 씨앗을 뿌리고 또 가꾸고 하다보니 시간의 흐름에 몸을 빼앗기는 일이 태반사이다.
밭에서 아침을 해결하기로 하고 서둘러 집을 나섰는데도 이미 시간은 배꼽 시계를 가만히 두지 않으니...

참깨를 뿌릴 이랑을 만들어야 되는데, 돌이 얼마나 나오려는지 걱정부터 앞서니 원..
쇠스랑으로 다져진 땅을 부드럽게 하고 한삽 깊숙히 삽을 밀어 넣으면 어김없이 날카로운 금속성 돌소리가 귀를 자극하였다.
오전 중으로 이랑을 만들고 오후에 감자 북주기를 하면서 여러작물을 손보려는데 일이 생각처럼 쉽지가 않았다.
아침 먹고 중참을 미숫가루로 해결하고 일하다 보니 어느새 2시가 넘고...

서둘러 삼겹살을 사러 포천 시내로 나가는데 날씨가 좋아서 그런지 깊이울 유원지를 찾는 차량의 행렬은 끊이지 않았다.
이번 일만 끝이나면 나머지 밭은 콩을 심기로 하고 대충 밭을 일구기로 했다. - 너무 힘들어서 ㅡ.ㅡ

그 동안 주인의 애닯은 소리를 들었음인지 이제서야 제법 구실을 하고 있는 감자를 북주고, 갈증에 목말라 했던 배추며 무우, 고추 등 여러 작물에 물을 흠뻑 주고 나니 어느새인가 어둠이 밭 한 쪽으로 길게 그림자를 드리우며 이제 일을 끝내라는 이야기와 함께 무거운 엉덩이를 들어올린다.

에고... ㅡ.ㅡ
참깨 이랑에 비닐 씌워야 되는데....
할 수 없이 야간 작업을 하기로 하고 100 촉 전등불에 의지하며 멀칭 작업을 완료하고 나니 시계는 8시 30분을 가르키고 있었다.

드디어 나도 올빼미 주말농부가 되고 말았다.
깜깜한 달밤에 멀칭을 했는데 제대로 작업이 되었을라나ㅡ.ㅡ

그제서야 늦은 저녁식사.
저녁을 먹고 나니 그 자리에서 눕고 만 싶어지는 심정이었다.
그러나 내일의 일이 있으니 그리할 수도 없고...
다음에 올 것을 기약하고 밭의 여러 식구들과 작별을 하고 집으로 향하니 여느때와는 달리 더욱 커진 둥근달이 환한 미소를 띄며 길안내를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