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7월 26일
노동과 수확, 여유와 서정이 깃든 푸른 공간
▲ '다차'는 별장이나, 주말농장, 또는 텃밭 등을 이른다.
동토의 나라 러시아에는 봄과 여름이 쉽사리 찾아오지 않는다.
나무들이 한창 푸르름을 더해가는 때라도, 눈은 여전히 남아 있다.
이 지난한 겨울의 상징은 마치 러시아를 독점하기라도 했다는 듯이 초록 잎사귀들 위에 오롯이 내려앉아 추위의 건재를 과시하려 든다.
그러나 해빙과 결빙의 지루한 밀고 당기기도 5월이면 결판이 난다.
이맘때 러시아 땅은 빛과 따사로움의 세례를 받아 새롭게 태어난다. 여름은 불현듯 찾아온다. 겨울이 춥고 어두웠던 만큼 밝고 따뜻한 여름의 의미는 크다.
러시아인들은 이 소중한 여름을 ‘다차(dacha)’에서 보낸다.
‘다차’에 해당하는 한국말은 없어서 정확하게 번역하기는 어렵다. 대체로 별장이나 주말 농장 혹은 텃밭 등을 아우르는 개념이라고 보면 된다.
모스크바나 페테르스부르그 같은 대도시를 벗어나면 이내 숲이 펼쳐진다. 도시에 가까운 쪽에는 철도 역마다 ‘사스노보’, ‘레소보’ 등의 이름이 있는데 약 50킬로미터를 벗어나면 역 이름이 희한하다.
철도 매표소에서 "아저씨, 78킬로 주세요" 하면 된다
‘78킬로’, 혹은 ‘64킬로’. 그게 역 이름이다. 철도 매표소에 가서 “아저씨, 78킬로 주세요” 하면 된다. 지명이 있는 곳에는 헛간이나 오두막집 같은 것들이 드문드문 보이고, 지명이 숫자로 나와 있는 곳으로 접어들면 통나무 집들이 꽤 많이 모여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간간히 멋진 건축물에 위성 안테나, 사격장, 수영장, 넓은 잔디밭까지 갖춘 초호화판 다차도 눈에 띈다. ‘노브이예 루스끼예(신 러시아인. 개방 이후 벼락부자가 된 러시아 부유층을 일컬으며 경멸의 뜻이 담겨있다)’들이 새로 지은 그들의 성이다.
일반적인 다차는 2층의 조립식 통나무 집으로 방을 두개 정도 갖춘 형태가 기본이다. 이것보다 조금 더 큰 것부터 아예 헛간 스타일까지 다차의 품격과 규모는 다양하다.
하지만 노브이예 루스끼예이건 평범한 사람들이건 다차에 들르는 것은 빼놓을 수 없는 여름 행사이며 거의 ‘신성한 의식’에 가깝다.
▲ '다차'(주말농장)에서 수확한 서양호박을 들고 즐거워 하는 러시아인들.
러시아 사람들이 다차에 가는 데에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하고 일반적인 이유를 대라고 하면 다차의 경제적 역할을 꼽아야 할 것이다.
그것은 도시 근교의 ‘별장’에서 생산 활동이 왕성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러시아 사람들은 다차에서 일용할 양식, 겨우내 먹을 감자 등을 재배한다.
그래서 다차는 음식 창고와 같다.
눈이 녹기 시작하면 러시아 사람들은 다차에서의 ‘여름 나기’ 채비에 바쁘다.
2, 3월에는 상점들마다 파종할 씨앗들이 불티나게 팔린다. 잡지나 신문들은 오이, 토마토, 감자, 피망, 호박 등 갖가지 품종들의 특성을 설명하는 난을 따로 마련한다.
올해는 어떤 종자를 심어야 좋을지, 어떻게 관리해야 할 지에 관해 재배 전문가들은 인쇄물의 질의 응답을 통해서 뿐만 아니라 라디오, 텔레비전을 통한 전화 상담에도 친절하게 조언한다.
마치 우리 시골에서 이맘때쯤 모내기에 바빠지듯이 러시아 인들도 파종 생각에 여념이 없다. 차이가 있다면 러시아에서의 다차 채비는 직업 농사꾼이 아니라 순수한 아마추어의 활동이라는 점이다.
특히 나이 든 연금 생활자들은 농사에 필사적이다.
2월이나 3월에는 이미 집집마다 씨앗들이 우유 곽이나 플라스틱 통 안에서 자라고 있다. 해가 길어지고 따뜻해지면 새싹들은 다차로 옮겨진다. 직업이 있는 도시민들은 대체로 주말에 다차로 가기 때문에 휴일이 지나고 난 월요일 직장의 가장 큰 화제 중 하나는 다차에 어떤 품종을 얼마나 심었는지 하는 것들이다.
몇 주 정도 지나고 새싹들이 많이 자라나면 사람들은 재배 현황을 ‘녹화 방송’하고 씨앗 봉지를 가지고 와서 품평회를 하기도 한다. 그들의 전문적인 해설을 가만히 듣고 있으면 나도 ‘농사’ 일선에 뛰어 들어서 경작에 몰두하고 싶은 기분이 들 정도다.
사실 한때는 필자도 한국에서 가져온 무를 집 주인 아저씨네 다차에 심은 적이 있다.
카자흐스탄의 사막을 옥토로 변하게 했던 한국인들의 기개를 러시아 다차에 실현해 보겠다고 공언하고는 가로 5m, 세로 10m의 땅을 얻었다. 주말마다 열심히 처녀 농사꾼의 꿈을 불태웠지만 불행히 난 직업을 바꿀 수 없었다.
나의 피나는 노력이 무색하게도 내 밭은 서서히 잡초 밭으로 변해갔다.
▲ '다차'에서 꼬치구이 '샤슬릭'을 굽고 있는 러시아인들.
유기농을 하겠다고 농약을 전혀 안 쓴데다가 매일 잡초를 뽑아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씨가 담긴 봉지에는 분명히 무가 팔뚝만하게 그려져 있었는데 재배된 무는 새끼 손가락만했다. 무청도 그림은 20cm가 훨씬 넘는 것이었으나 내 것은 최고 길게 자란 이파리가 7cm였다.
나처럼 실패의 쓴 잔을 마시는 사람들도 전혀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러시아 사람들, 특히 나이든 연금 생활자들은 농사에 필사적이다. 다차 농사는 생존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사람들이 다차에서 얼마나 많은 야채를 생산하는지 정확하고 공식적인 통계는 없다. 어떤 경제학자는 다차 땅 아래 숨겨진 감자가 총 감자 생산량의 90%를 차지한다고 하는데 이 말은 러시아 ‘지하 경제’의 위력을 확인해 주는 듯 하다.
온 가족이 주말마다 다차에 가서 농사일을 하는 것은 일상적인 관례다. 여름에는 많은 사람들이 아예 다차에 상주한다. 이 현실이 젊은이들에게 꼭 달가운 것만은 아니다. 자유롭게 젊음을 누릴 기회를 빼앗기고 부모님의 농사일을 돕는 젊은이들은 다차를 일종의 ‘집단 농장’으로 생각한다.
어떤 젊은이는 인터넷 사이트에서 이렇게 볼멘 소리를 한다.
땀흘려 일한 후 박하사탕 같은 시원한 바람을 쐴 수 있는 곳
“매년 학생들은 착취 계급인 부모님에 떠밀려 밭으로 향한다. 우리들의 금쪽 같은 시간과 힘을 파괴하기 위해서. 되돌아오는 길은 없다. 사실 우리는 진보적이며 무척 도덕적이라서 부모님이 혼자 지쳐 쓰러지는 모습을 지나칠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게 바로 우리의 딜레마다. … 왜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노는 공장들을 돌리고 생산활동을 증강시켜서 경제란을 극복하지 않고 원시 농업 사회로 되돌아 가는 방법을 택했을까(러시아는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식량난을 해결하기 위해 노는 땅을 배분하고 각자 ‘알아서’ 배고픔을 해결하라는 정책을 취했다)… 하지만 독자들은 이 글을 부모님에게 알리지 말아 주시라. 화내실지도 모르니까”
다차는 이렇게 노동의 공간이다. 그러나 아무리 허름하고 좁더라도 울창한 자작나무, 푸른 하늘, 맑은 공기, 새 소리에 둘러싸인 다차가 그들만의 안식처인 것만은 사실이다.
도시의 소음과 스트레스를 벗어나 자연 속에서 땀 흘리고 열심히 일한 후 박하사탕처럼 시원한 바람을 쐴 수 있지 않다면, 사람들이 그렇게 기를 쓰고 다차로 전진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차는 육체의 생존을 위한 음식을 주고 정신의 재생을 위한 휴식을 주는 곳이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몸과 마음의 수양을 위해 산속으로 들어간다면 러시아인들은 숲과 다차에 은둔한다.
▲ 밀밭에서 뛰노는 러시아 여자 아이.
러시아에 있을 때 알게 된 블라디미르와 갈리나는 은둔자에 속한다.
블라디미르는 올해 62세로 10년 동안 별장지기로 일했다.(그가 아직까지 별장지기로 일하는지는 모르겠다.)
블라디미르는 전직 신경과 의사였는데 90년대 초반에 직장을 그만두었다. 혼돈과 무질서, 폭력이 난무하는 당시 러시아 삶에서 그는 ‘아무’도 아니었다.
발 빠르게 돈을 벌지도 못했고 그 사회 전체의 신경증을 고치겠다는 혁명가적 정열도 불사르지 못했다. 한쪽은 너무 교활했으며 다른 한쪽은 지나치게 몽상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예전부터 동양 철학에 심취해 있던 그는 자연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남의 별장에서 일한다는 것은 여러 가지로 그에게 어울리는 일이었다. 그는 앞서 말한 신 러시아인인 ‘노브이예 루스끼예’의 별장에서 잔디를 깎거나 기타 힘을 써야 하는 집안 일을 했다.
일이 끝나면 바로 옆에 있는 자신의 허름한 다차로 돌아와 동양 철학을 읽고 글을 썼다. 남들은 휴일을 이용해 다차에 오지만 그는 토요일, 일요일에 도시의 집으로 가서 사진을 찍었다. 그는 나무와 숲, 공원, 가족의 얼굴 등 사진을 찍고 직접 현상한다. 잔잔한 흑백 톤의 사진들 안에 블라디미르가 담은 삶의 관조와 응시는 나의 시선이 가 닿을 수 없는 현실의 깊이를 보여주었다.
그는 전시회도 왠지 속되게 느껴진다며 이따금씩 들어오는 제의를 거부한다고 말한다.
괭이와 삽, 바구니 등을 들고 북적거리는 열차에 실려…
블라디미르의 아내 갈리나의 이력도 재미있다.
갈리나는 56세로 블라디미르의 두 번째 부인이다. 블라디미르는 첫번째 부인과 이혼하고 한참 뒤 갈리나를 음악 학교에서 만났다.
갈리나는 음악대학의 클래식 기타 선생님이었고 블라디미르는 플룻 강습을 들으러 그 학교에 갔던 것이다. 그와 결혼하여 갈리나는 세 아들을 두었고 블라디미르가 직장을 그만둔 후 몇 년을 더 학교에서 일했다. 그러나 갈리나도 곧 음악학교를 떠났다.
그녀는 블라디미르와 같은 별장에서 역시 빨래, 청소, 음식 등의 일을 맡았다. 휴일이면 간간이 클래식 기타 레슨을 해주러 도시로 돌아왔다. 그들은 가끔 함께 연주를 했다.
아직도 태양의 여운이 남아있는 밤 10시, 11시, 플룻과 기타 연주가 어우러진 바하와 모짜르트, 러시아의 민요들이 울려 퍼졌다. 어떤 연주회에서 그와 같은 감동을 얻을 수가 있으리…
다차는 러시아 사람들에게 육체의 허기와 정신적 공허를 채워주는 곳이다.
감자와 토마토, 오이와 함께 시, 그림, 음악이 이곳에서 자라난다. 찌들고 지친 일상에서 언제든지 가 안길 수 있는 다차의 품안은 포근하다.
그래서 태양이 길어지는 여름이 오면 러시아 사람들은 괭이와 삽, 바구니, 혹은 펜과 붓, 악기를 들고 북적거리는 열차에 실려서 다차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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