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원뉴스

“노지서 2m 넘는 고추 키웠어요”

by 늙은여우한마리 2011. 8. 11.

2006년 8월 30일

퇴비·목초약·막걸리등 이용 유기농 재배
평범한 종자에도 최고급 고추 2~3배 더 달려
“야채 재배 노하우 터득하는 과정 큰 보람”

[조선일보]

노지(露地)에서 햇빛과 비바람을 담뿍 받고 자란 고추의 키가 2m를 훌쩍 넘어버렸다. 꼭대기는 아직도 하얀 꽃이 바투 피어나고 있다. 주변 밭에선 허벅지나 허리께 올 법한 고추줄기가 옥수수 같았다. 줄기마다 주렁주렁 달린 싱싱하고 큰 고추는 다른 데보다 2~3배는 더 열렸다. 한입 물어보니 매콤하면서도 달콤했다. 어떻게 이 밭에서는 ‘고추나무’가 클 수 있었을까? 포천 직동리의 산자락 텃밭에서 만난 홍왕표(60)씨는 3년째 성공하고 있는 ‘고추 나무’의 비법을 공개했다.

“지극히 평범한 종자의 모종을 남들과 같이 5월에 심었어요. 하지만, 그냥 심지 않았습니다. 정확히 35cm간격 폭으로, 밭은 60cm, 고랑은 40cm로 가장 경제적인 거리를 유지했지요.”키 큰 고추가 만들어준 그늘숲 사이로 거미 줄이 군데군데 보인다. 끝이 노랗게 타 들어가다 멈춘 고추도 드물게 보인다. “유기농을 할 때는 여러가지 징후를 잘 포착해야 합니다. 그 중 하나가 거미지요. 거미가 있다면 이 ‘숲’은 건강하다는 뜻이죠. 또 탄저병이 들려고 시들시들해지는 고추가 있으면, 농약 대신 퇴비를 더 주고, 물을 자주 줍니다. 탄저병이 감기 같아서 잘먹고 휴식 취하면 낫듯이 식물도 같더군요. 탄저병이 시작된 고추는 따지 않고, 더 이상 퍼지지 않는 것을 확인하면서 ‘아… 이겨냈구나’하고 생각해요.” 진드기를 옮기는 개미는 페트병의 가운데를 뚫고, 막걸리를 담아 세워서, 스스로 빠져 죽게 한다. 잎에다 알을 까는 나비는 6개월간 숙성한 목초액을 뿌려서 쫓는다. 그러다 보니 농약 칠 일이 없다.

음식 맛이 장맛이라면, 농사는 퇴비가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밭에는 수제 퇴비를 만드는 공간이 2평 가량 마련되어 있었다. “식물의 뿌리 중에서도 봄과 가을의 것이 좋습니다. 그 때가 영양이 많거든요. 거기다 요소 넣고, 발효제를 뿌리면 하얀 곰팡이가 생기면서 좋은 퇴비가 됩니다. 여기까지는 여느 농사꾼이나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퇴비를 그냥 주지 않아요. 고랑 사이에 몇 일간 깔아 두었다가 중화가 되었을 성 싶으면 뿌리 위에 덮어 주죠. 그냥 올리면 식물이 독이 올라 죽습니다. 그게 저만의 노하우죠.”

마지막으로 최대의 노하우는 가지를 가지런히 모아주는 것. “가지가 옆으로 벌어지면 중력을 받아서 위로 뻗지를 못해요. 그래서 마디에서 줄기가 나올 때마다 끈을 둘러 주었습니다. 세 번 정도 하면 그 다음부터는 스스로 위로 자라더군요.” 홍왕표씨는 구청 공무원으로 25년간 일하고 지금은 퇴직했다. 또, ‘동사무소 마을 문고 설치’를 건의해서 ‘제 1회 자랑스러운 서울시 공무원상’을 받기도 했다.

“전문 농업인은 아니면서도 책과 실제 경험을 통해 얻은 독특한 방법으로 유기농 야채를 쉽게 잘 키우는 노하우를 발견해나가는 게 큰 보람이에요.”

가을로 성큼 들어선 늦여름, 고추 ‘숲’ 사이로 불어오는 산바람이 매콤했다.

(서지혜 주부리포터 sergilove00@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