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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뉴스

김장 무 배추 심으셨나요?(2003년 9월 4일)

by 늙은여우한마리 2011. 7. 10.
김장 무, 배추 심으셨나요?

▲ 꺼내기가 힘듭니다. 밑에서 쏙 밀어줘 흙이 떨어지지 않게 조심히 빼서 한손으로 잡고 있다가 홈에 넣고 주변 흙을 끌어다 붙이고 다독거려주면 됩니다.

 
ⓒ2003 김규환
계절의 변화를 감지하고 가을걷이를 미리 생각하다

낮엔 30도를 오르내리지만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분다. 가을인가? 멀리 인천에서도 북한산이 보이니 여름에 못 보던 맑은 하늘이다. 그래, 확실히 가을이다. 하늘엔 오후 들어서 뭉게 구름이 멀리 가지 못하고 꼼지락거리고 있다. 정말이지 구름 한 자락 없는 맑고 고운 하늘이다.

글 쓰고 있는 으쓱한 밤 창밖엔 귀뚜라미 소리가 '쏠 쏠 쏠' 요란하다. 쉬지 않고 울어댄다. 그네들은 목도 아프지 않은가? 가을의 전령사를 맞이할 준비도 하지 않았는데 이리 가슴 시린 음성을 들려주니 거둘 것 없는 세상에 마지막 씨뿌림을 서둘러야겠다.

방 안으로 제법 싸늘한 기운이 들어온다. 창문을 조금씩 닫아야 한다. 숨가쁘게 달려온 2003년도 얼마 남지 않았는가 보다. 올 가을엔 난 무얼 거둘 수 있을까? 아무 것도 없어 보이지만 막상 적으면 꽤 많은 목록이 쓰여지겠지.

▲ 친구 어머니가 정성들여 씨를 넣은 종이컵, 작년에도 쓰고 올해도 또 쓰셨답니다. 이런 어린 싹이 나중에 보면 1킬로나 되는 큼지막한 배추가 되니 참 신기하지요. 농민들과 자연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2003 김규환
미리 준비한 배추 모종과 무, 상추, 갓 씨앗

비가 그치자 작년의 실패를 교훈 삼아 비닐 컵과 재활용 종이컵에 미리 씨앗을 넣어둔 배추를 갖고 밭으로 나갔다. 8월 중순 하루 햇발은 9월의 이틀 분이나 사흘 분에 해당한다. 하루를 넘기면 그만큼 농작물이 더디 자란다.

주말에 사람들과 시간 약속을 해놓고도 며칠 앞당겨 김장채소를 심었다. 배추 모종 150개 무씨 세 봉지, 돌산 갓 씨, 상추씨도 땅을 파고 퇴비를 뿌리고 뒤집어 뿌려줬다. 나무 밭 농장에 마땅한 곳은 비닐을 씌운 사이 사이 고랑을 이용하는 것이다. 햇볕만 적당하면 정성껏 기르면 올해도 겨울을 나는 데는 무리가 없겠지.

지난 번 다녀온 휴가 말미에 벌써 시골에선 배추 심는 농민이 보였다. 무도 심을 준비를 분주히 하고 있었다. 오후 2시에 친구와 친구 어머니가 나와 있었다. 제초제를 쓸 일 없이 풀씨가 생기기 일주일 전에 미리 풀을 뽑아주니 풀이 잘 말라 있다. 언젠가 퇴비로도 쓸 수 있겠다.

 

▲ 모종을 심을 자리에 하나 씩 올려 놓은 건 친구 몫이었습니다.
 
ⓒ2003 김규환
김장 배추 심기

퇴비는 다섯 가마만 샀으니 흩어 뿌리기에 적은 양이다. 삽으로 골을 따라 깊게 파주고 팠던 곳에 조금씩 넣어 준다. 유기물인 퇴비는 화학비료와 달리 영양분을 지속적으로 공급해 꾸준히 자랄 수 있게 도와준다.

퇴비를 빠짐없이 고루 넣어주고 풀뿌리에서 흙을 털어 제거하고 땅을 고르게 했다. 땅을 고르니 훌쩍 4시가 넘으니 나무숲 가까운 곳엔 그늘이 드리워진다. 길게 자란 그림자를 보아 가장 오래 해가 뜰 곳에 배추 포기를 군데군데 놓아두고 배추를 심어 나갔다.

배추 모종이 뿌리박음이 수월하게 골라둔 흙덩이를 손으로 한 번 더 잘게 부숴준다. 세상에는 수많은 도구가 있지만 손을 따라올 연장은 없다. 약간 패이게 홈을 파고 배추를 한 손으로 밀어내 가지런히 앉혔다. 너무 깊게 심으면 성장에 이로울 게 없으니 위로 솟았다 싶게 올리고 주변 흙을 끌어와 붙이고 꾹 눌러앉혔다.

아직은 여리고 가녀린 줄기는 약간의 상처에도 끊어지기 쉽다. 비가 오랫동안 내린 탓이다. 손에 닿아도 죽으니 흙이나 주변 장애물에 치이지 않게 갓난아기 다루듯 조심스럽다. 넘어지면 살살 어르고 달래 꼿꼿이 서게 해줘야 한다.

이게 밭인가 싶던 자리가 배추를 심어 놓으니 밭 행세를 하니 기쁘다. 150포기지만 컵 하나에 배추 싹이 두세 포기씩 난 것이 있다. 나중에 하나만 남기고 솎아서 겉절이를 해 먹어도 좋으리라. 한 시간 반 가량 배추를 조심스레 심었다. 곧 해가 질 것이니 물까지 주는 수고는 덜었다.

 

▲ 허리 아프시다면서도 쉬지 않고 일하시는 우리 부모님들. 누가 할 거냐며 죽어라 일 하시고는 밤새 끙끙 앓습니다. 연휴에 고향에 한 번 가보세요.
 
ⓒ2003 김규환
한해를 마감하는 씨를 뿌리고...

배추씨를 땅에 직접 파종 해본 사람은 배추 심기가 얼마나 힘들고 더딘가를 안다. 가는 흙 알갱이와 크기가 똑같은 작은 종자를 두세 개 집어넣고 흙이 먼지에 날리도록 덮는 듯 마는 듯 날려 뿌려주기를 반복한다. 심었다고 100% 나지도 않고 어떤 해는 서너 번 씨앗을 넣느라 가을을 보내는 경우도 있다. 올핸 그 어려운 일을 덜었다.

이제 손에 만져지는 느낌이 있는 무와 상추를 심으면 된다. 돌산 갓도 심어 가을을 향기롭게 날 생각에 부풀어 있다. 배추보다 약간 척박한 땅에 심는다. 땅을 고르고 말 것도 없이 씨를 줄뿌림을 하고 흙을 한 줌 쥐어 대강 뿌려서 덮는데 씨가 보일락 말락 하게 덮는다. 통상 씨 크기만큼만 덮어주니 이도 쉽지는 않지만 배추씨의 열 배는 되니 일의 진척은 빨랐다.

봄가을 식탁에 뺄 수 없는 게 쌈 꺼리다. 상추쌈도 몇 번 먹으려고 좁은 곳에 휘휘 뿌리고 나뭇가지로 슬슬 쓸어 주니 그걸로 끝이다. 갓 씨도 퇴비를 넣고 흩뿌림을 한 후 상추와 마찬가지로 심어 놓았다. 시간이 허락지 않아 아욱을 심지 못했으니 언제고 한 번 가서 심어놓아야 한다.

▲ 몇 번을 지켜 보더니 친구도 곧잘 합니다. 무슨 일이든지 배우려고 맘먹으면 금방이지요.
 
ⓒ2003 김규환
농작물 분배의 원칙

친구네 밭이지만 우린 분배의 룰이 일정하게 정해져 있다. 남들이 보면 씨앗, 퇴비, 비료에 새참까지 싸오시는 데다 교통비까지 주시니 모든 게 친구네 것이라 할 것이다. 사실 그렇게 생각해도 별 무리는 없다.

하지만 시장에 내다 팔 목적이 아니고 같이 나눠먹자고 한 터에 그렇게까지 하지 않는다. 1 : 2로 나눠 1은 내 차지가 되고 나머지 2는 친구네 어머니 몫이다. 그 2에 해당하는 수확물을 혼자사시는 자신 그리고 아들, 딸들에게 조금씩 나눠주신다.

그러니 어찌 보면 내 몫이 제일 많지만 친구 어머니는 스스로 터득하시고 친구들인 아들과 사위에게 농사짓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셈치는 것이다. 내 것 네 것을 나눌 처지도 아니지만 그 생각자체를 하지 않으니 편하고 잘 자라게만 가꾸니 얼마나 좋은가.

▲ 경기도 남양주시 한강수변구역에서 작년 가을에 찍은 사진. 그 쪽에 가면 주말농장이 꽤 많습니다. 팻말이 보이지요?
 
ⓒ2003 김규환
아이들에게는 자연 학습장, 어른들에겐 푸성귀 농장

작년보다 열흘은 앞당겨서 심었으니 올해는 물주고 거름주고 북돋아서 정성껏 키우리라. 밥에 된장 고추장 조금 싸서 밭으로 나가 배추 한 포기 뽑고 상추 한 줌, 들깻잎 따서 매 주말마다 소풍을 갈 작정이다.

굳이 시장에서 사다 먹을 일 없다. 일하는 보람을 느끼고 약 안 친 안전한 채소를 먹으니 몸에 좋다. 씹히는 맛이 다른 채소를 먹으니 양껏 먹어도 소화는 걱정 없다. 이래저래 올 가을은 내 미각이 다시 살아날 것이니 이것도 세상사는 즐거움이다. 이미 나는 고구마순과 풋고추, 깻잎 따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아이들에겐 농작물이 자라는 걸 낱낱이 시기마다 보여줄 것이다. 메뚜기, 풀무치, 여치가 후두둑 튀고 지렁이 질질 기어다니는 걸 보여주면 한 참 말 배우는 때 또 다른 학습이요, 교육이 될 것이다.

아이들이 밭을 조금 밟으면 어떤가. 그 작던 싹이 자라 쑥쑥 커서 배추 포기, 무 뿌리가 들고 그걸로 김치를 담그면 더 맛나게 먹어 주겠지.

딸 해강이는 어린이 집에서 뭘 먹었느냐고 물어볼 때마다 김치만 먹었다고 한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것도 김치라고 한다. 그 김치 재료가 이 배추라는 걸 터득하도록 돕는 것도 잊지 않고 할 것이다. 며칠 전에는 무김치도 맛있다는 이야기를 해준 바 있다.

올 가을에는 배추와 무, 상추에 아이가 커 가는 것까지 수확할 수 있으리라.

▲ 가을엔 배추 쌈이 맛있습니다. 겉절이를 해도 맛있구요. 많이 심을 필요도 없습니다. 필요한 것 두배 정도만 심어서 중간에 뽑아 먹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용기를 한 번 내보세요. 서툴면 서툰대로 차차 배워가면 됩니다. 주위에 사람 없으면 저라도 도와드리겠습니다. 땅만 구해 놓으세요.
 
ⓒ2003 김규환


오마이뉴스 김규환 기자 (kgh17@hite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