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5월 19일
꽃을 보면서 아름답다고 느끼고,사계절의 변화에 감탄할 수 있는 여유있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자연으로부터 배우며,그 속에서 삶의 질서를 배워나가는 것이 자연과학이라고 할 수 있을 터인데 소위 자연과학도라는 나 자신도 항상 자연을 가까이 대하면서 살아왔던 것 같지는 않다.
어느 날 문득,아마도 내 삶에 어느 정도 안정과 여유가 찾아왔을 무렵이겠지만 자연에 대한 관찰이 주된 즐거움의 하나로 다가왔다.
'콩 심은 데 콩 나고,팥 심은 데 팥 난다'는 단순한 논리를 터득하면서 이를 자연을 통해서 더욱 확실하게 체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년 전 후배 두 명과 약간의 땅을 마련해 일종의 주말농장을 시작하게 되었다.
밭농사를 한 번 제대로 배워보고 싶다는 욕심으로 마늘과 고추 깨 옥수수 부추 토마토 파를 비롯해 심지어 땅콩이나 고구마까지 다양한 작물을 시도해보았다.
물론 작황은 내가 기대했던 것과 같지는 않았지만 그 대신 여러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쪽마늘 하나가 마늘 한 통의 뿌리로 자라기 때문에 마늘이 비쌀 수밖에 없는 이유,고추는 약을 치지 않으면 병충해에 너무도 약하고,토마토는 익기만 하면 곧 까치 밥이 되기 일쑤였고,부추는 한 번 심어놓기만 하면 뿌리가 남아있는 한 매년 잘라내어 먹을 수 있었다.
그런가 하면 따먹어도,따먹어도 수도 없이 새로 나는 깻잎이며,캐어도 캐어도 자꾸만 이어지는 고구마 넝쿨은 또 어떠했던가! 정말로 제각기 모습은 달랐지만 심은 대로 거두고,노력한 만큼 그 대가가 주어진 소중한 경험을 하였다.
이들이 저마다의 특성을 지닌 채 채소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불리듯 어쩌면 우리 인간도 저마다의 능력과 소양을 지닌 채 한데 어울려 살고 있으리라.
5월.
그 어느 때보다도 어린이와 어른,가정과 사회에 관한 생각이 많아지는 때인 것 같다.
이 사회에서 우리 어른들에게 주어진 역할이란 무엇일까?
어쩌면 어린 싹들이 각자의 특성에 맞게 잘 뻗어나갈 수 있도록 거름을 주고,물을 주고,병충해를 막아주는 것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주말농장에서 마늘을 가꾸고,고추와 파를 키우면서 자연으로부터 배운 것은 너무도 많다.
그래서 사람은 죽을 때까지 배우는 지도 모르겠다.
<한국경제신문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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