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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뉴스

텃밭사랑’ 빠져들면 화목(2004년 5월 11일)

by 늙은여우한마리 2011. 7. 13.
“온가족이 탁 트인 자연속에서 풋풋한 흙내음을 느끼며 채소를 재배하는 재미가 너무 좋아요”

가랑비가 흩날린 지난 2일 낮 12쯤, 인천 남동구 도림고교 뒤편 초록농장. 인천환경운동연합이 운영하는 주말농장인 이곳에 맨 먼저 도착한 김해영씨(32·여) 부부는 8평짜리 밭으로 한걸음에 달려갔다.

“어, 일주일만에 벌써 싹이 돋았네. 너무 신기하고 귀엽다.”

김씨 가족이 지난주 씨앗을 뿌렸던 상추와 배추 싹이 흙을 헤집고 나와 햇볕을 쬐고 있었다. 곧이어 큰 언니네의 1남3녀 가족이 속속 도착해 밭으로 뛰어 들었다.

- 휴식·노동의 재미 만끽 -

김씨의 형부 최계도씨(43)는 호미를 꺼내들고 “밭농사는 고랑을 잘 만들어 줘야해. 비가 많이 오면 물에 잠겨 뿌리가 썩을 수도 있거든”이라며 밭을 일구기 시작했다.

가족들이 고랑을 만드는 동안 김씨는 옆 비닐하우스에서 개당 100~200원 주고 상추와 고추모종 등을 한아름 사 왔다. 이어 호미로 흙을 파낸 뒤 모종을 심고 씨앗을 뿌렸다.

김씨는 일손이 서툰 조카 김다운군(9)에게 “열심히 물을 주고 가꾸면 고기를 싸먹을 수 있는 상추가 쑥쑥 자란단다”며 “컴퓨터만 하지 말고 자연이 사람들에게 어떤 도움을 주는지도 배워보라”고 말했다.

김씨는 “주말농장이 아이들에게 흙을 밟고 뛰어놀며 채소를 재배할 기회를 주는 것은 물론 가정의 화목까지 안겨주었다”고 흐뭇해 했다.

가족들이 한창 흙과 씨름하는 사이 어머니 정성남씨(67·여)는 개울가 제방에서 자란 담배나물을 캤고 거동이 불편한 아버지 김용성씨(71)는 온 가족이 한데 어울려 지내는 모습을 웃음으로 지켜보았다.

김씨의 농장과 인접한 12평짜리 밭에서는 전금녀씨(40·여) 가족들이 씨앗을 뿌리느라 바쁜 모습이다.

남편 김덕수씨(48)는 “고추와 배추를 심기 위해 처음 나와 봤다”면서 “어렸을적 시골에서 농사를 배운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고향도 생각나고 흐뭇하다”고 말했다.

- 생명의 존엄성 깨달아 -

아들 김민성군(11)은 사촌 동생들과 뛰어 다니며 생태계 관찰의 재미에 푹 빠졌다.

김군은 “거미도 보고 개미와 지렁이도 관찰했는데 앞으로는 식물도감을 보고 야생화 이름을 배우겠다”며 즐거워했다.

전씨는 올 가을에는 김장배추를 심어 온 가족이 같이 김장을 담글 계획이다.

인천환경운동연합이 마련한 300평의 주말농장에는 50가구가 땅을 경작하고 있다.

참가자 대부분이 처음 시작하는 주말농장이지만 시내 중심가 인근 그린벨트에 있어 주말마다 가족들로 북적인다. 이 단체는 초보자들을 위해 인터넷 게시판에 매주 해야 할 일과 경작법, 관련 책자소개에 대한 안내글을 올리고 있다.

특히 친환경농업을 위해 화학비료와 농약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 대신 한약찌꺼기와 발효된 퇴비를 이용하고 있으며 하반기부터는 음식물 쓰레기로 만든 퇴비도 사용할 계획이다.

또 공동 경작의 묘미를 살리기 위해 30평의 공동 텃밭에 감자를 심고 매달 한차례씩 전체 가족모임을 갖고 농사법과 유기농장 견학 등을 진행 중이다.

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류재성 목사(47)는 “주말농장을 휴식공간으로 생각하기 이전에 농작물 재배를 통해 노동의 고귀함과 생명의 존엄성을 깨달아야 한다”며 주말농장의 참 의미를 설명했다.

〈유성보·한대광기자 iloveic@kyunghyang.com〉<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