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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뉴스

친환경농업만이 살길이다(2004년 5월 11일)

by 늙은여우한마리 2011. 7. 13.
경기 남양주에서 농사를 짓는 김명배씨(39)는 “농약병 본지 오래됐다”고 말했다. 그의 논과 밭 어디에도 농약은 사용되지 않는다. 유기농법으로 신선초와 열무, 달래를 재배하는 것이다.

그가 유기농법을 선택한 것은 1980년대 말이다. 87년 군 제대 후 농사일을 돕던 그는 농약 때문에 끔찍한 경험을 했다. 그해 ‘논에 농약을 치러 간다’던 아버지는 해가 저물도록 귀가하지 않았다. 걱정 끝에 찾아나선 그는 논두렁에 쓰러진 아버지를 발견했다. 농약에 중독된 것이다. 다행스럽게 건강을 되찾은 아버지는 지금 함께 농사를 짓지만 이때의 일로 결코 농약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김씨는 결심했다.

쉽지 않은 선택이었고 주변의 만류도 많았다. ‘미친 X’라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하지만 김씨는 굿굿하게 버티었다. ‘생명산업’ 농업을 농약으로 파괴해서는 안된다는 신념을 꺾지 않았다.

그가 처음 시도한 유기농작물은 방울토마토였다. 시작후 4년간은 작황이 좋지 않았으나 땅은 김씨가 흘린 땀방울만큼 보답했다. 적응기간을 지나자 땅은 되살아났고, 적지 않은 수익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몇년 뒤 외환위기 때 된서리를 맞았다. 기름값이 엄청나게 뛰어 은행 빚만 늘었다.

그는 낙담하지 않았고, 기후와 지역적 특성에 맞는 달래로 대체했다. 판단은 적중했고, 그는 지금 전국 제일의 품질을 자랑하는 달래 생산자가 됐다. 백화점에서도 입점 제의가 들어올 정도다. 외환위기 때 진 은행 빚도 거의 다 갚았다. 7,000여 평의 논밭에서 얻는 소득만 한해 1억2천여 만원에 이른다. 현재 주요 수입원은 비닐하우스에서 재배중인 열무와 신선초다. 각각 1,000평과 800평 규모로 매출은 3천만원 정도다. 겨울이 되면 그 자리에 달래를 심는다. 주력상품인 달래는 9천만원의 매출을 보장한다. 이밖에 1,000평의 논에서 나오는 쌀로 자급하고 있으며, 주말농장 형식으로 외지 사람들에게 5년 전부터 분양하고 있는 450그루의 배나무 등을 돌보고 있다. 소득도 소득이지만 무엇보다 힘들여 키운 농작물이 제값을 받는다는 것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

그가 재배한 유기농산물은 ‘팔당생명살림영농조합’에 넘겨진다. 팔당 상수원지역 67개 유기농가가 가입된 조합은 95년 12월 결성됐다. 영농조합은 인근 축산농가로부터 분뇨를 지원받아 농가에 공장형퇴비를 공급하고 있다. 또 농민들이 수확한 농산물의 판매를 책임진다. 구리·남양주·하남 지역 생활협동조합 1,000여 가구와의 연계를 바탕으로 물량을 소화하고 있다.

‘친환경 농꾼’, 김씨의 소망은 모든 농업인들이 농약을 쓰지 않은 농산물을 재배, 우리 국민의 식탁을 안전하게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정부가 하루속히 대대적인 친환경농업 지원책을 내놔야 한다고 그는 지적했다.

“지금까지 정부가 내놓은 친환경농업 지원책이라는 게 성과를 낸 게 있습니까. 기껏 농가보전 직불제니, 각종 지원금 분배니 하지만, 그건 농민을 지원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농가부채만 늘리고 농사포기를 유도하는 겁니다.”

그는 또 “정부는 농업인들에게 지금과 같은 농업개방시대에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줘야 한다”면서 “그것은 친환경농업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시장이나 기후, 지역적 특성상 모든 농업인이 똑같은 농법으로 똑같은 작물을 재배할 수는 없다”는 그는 “지역에 맞는 작물과 농법으로 특화, 지역소비자의 구미에 맞는 상품으로 시장을 뚫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게 해야 소비자도 신뢰할 수 있는 우리 농산물을 찾고 농업인들도 힘든 이 시대에서 당당히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남양주/경향 신문 장관순기자 quansoon@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