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5월 22일
[시골은 도시 은퇴자의 노후 웰빙 거주공간..늘어나는 전원생활 수요
베이비붐 세대 56% "농촌이주 의향 있다"..실버 귀촌은 세계적 추세
(서울=연합뉴스) 김용수 편집위원 = 노후나 은퇴후에 전원생활을 하기 위해 시골로 향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살기 불편하다는 인식이 많았던 농촌이 여유롭고 건강한 노후를 원하는 실버세대의 웰빙 거주 공간으로, 평균수명의 증가와 조기 퇴직으로 제2의 인생을 준비해야 하는 도시 은퇴자들의 삶의 터전으로 새롭게 각광을 받고 있다.
얼마 전만 해도 전원생활은 대체로 돈많고 나이 든 사람들의 관심사항이었다. 전원주택이 들어서는 지역도 서울에서 가까운 수도권이 중심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주말이면 쾌적한 환경의 전원주택지나 시골 텃밭을 찾아 전국을 누비고 다니는 예비 귀촌인들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전원생활 교육장이나 농촌 체험 교실, 영농 교육장 등에는 `실패하지 않는 전원생활'을 위해 미리 준비하는 도시민들로 붐비고 있다. 직접 살 집을 짓기 위해 통나무 학교나 황토구들방 학교를 다니는 사람들도 있다.
지난해 농림부가 국정홍보처와 공동으로 서울과 6대 광역시에 거주하는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 1천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56.3%가 은퇴후 농촌지역으로 이주할 의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농촌 이주 의향자 가운데 현재 농촌으로 이주, 정착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고 대답한 사람은 41.4%. 왜 농촌으로 삶의 터전을 옮기고 싶으냐는 질문에는 가족건강(37.3%), 여가생활(32.6%), 고향에 대한 향수(11.4%) 등을 꼽았다.
◇ 도시 은퇴자의 웰빙거주 공간으로 각광받는 농촌 = 이미 전원으로 떠난 사람들도 많다. 도시 근교의 풍광 좋은 전원 주택지는 어김없이 도시민이 점령한 지 오래이다. 마음에 든다 싶은 시골의 빈 농가치고 도시 사람들이 사들이지 않은 곳이 드물 정도다. 농림부 자료에 따르면, 귀농 인구(주민등록 전입 기준)는 외환위기 이후인 1998-99년 일시적으로 급증한 후 수그러들었다가 2003년부터 다시 늘어나는 추세다.
강원도 횡성의 김미영 부곡1리 이장은 "마을 전체 30 가구 가운데 11가구가 최근 6-7년 사이에 외지에서 온 사람들"이라면서 "외환위기 전에는 투기 목적으로 땅만 사두는 외지인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요즘에는 집을 지어 시골에 정착하는 도시민들이 많다"고 말했다.
도시민이 추구하고 있는 전원생활의 형태와 흐름도 다양해지고 있다. 90년대 중반까지 민주화 운동을 하던 사람들의 의식화된 귀농이 주를 이루던 것이, 외환위기 때 급증했던 생계형 귀농과 2000년대 초반의 30-40대를 중심으로 한 전업형 귀농을 거쳐 최근 들어서는 장노년층의 귀촌이 두드러지고 있다.
실제 귀농가구 중 연령이 50대 이상의 가구 비율은 외환위기 직후 10%대에 불과했지만 2004년, 2005년에는 48%, 41%로 늘어났다. 전과는 달리 농업을 하기 위한 귀농보다는 정년 퇴직이나 조기 퇴직, 명예퇴직 등 은퇴 과정을 거친 집단의 노후생활형ㆍ실버형 귀촌이 늘어나고 있는 셈이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2005년말 현재 전국의 농가 인구는 343만명으로 5년 전보다 14.8% 감소하고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8.7%에서 7.3%로 낮아졌지만 대졸 이상의 농가인구는 오히려 31% 늘어났다.
이와 함께 전에는 전원생활이 일부 부유층의 별장 생활쯤으로 인식됐지만 지금은 전혀 다르다. 직업이나 나이, 경제력 등에 관계없이 건강과 쾌적한 환경을 찾아 생계 수단과 주거 공간을 시골로 옮기고 있다.
◇ 별장형 호화주택서 노후생활형 전원주택으로 = 과거에는 별장을 연상케 하는 크고 화려한 전원주택이 눈에 띄었지만 요즘에는 전원주택 규모도 30-40평형으로 작아지고 10평대의 실속형 주택이나 방갈로 같은 이동식 주택들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재택근무와 주5일 근무제 등으로 젊은 직장인들이 전원에서 살면서 도시로 출퇴근하거나 반대로 도시에 살면서 주말주택이나 주말 농장 개념으로 전원생활을 즐기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전원생활이 실수요자 중심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또 예전에는 도시에서 일거리를 찾지 못해 농촌으로 이주하는 소극적인 `실직 이주자'가 많았지만 지금은 직업이나 경제적인 이유보다는 은퇴후 복잡한 도시를 떠나 작은 텃밭이라도 가꾸면서 건강한 삶을 살고자 하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농촌 이주가 많은 게 특징이다. 이러다 보니 농촌의 역할도 단순한 농업생산에서 휴식공간이나 자연 경관 공간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김경래 `OK시골' 대표는 "최근 전원생활의 트렌드는 실수요자 중심, 소형화, 집단화, 참여화"라면서 "전에는 전원주택이 경치좋은 계곡 등의 외딴 곳에 들어섰지만 지금은 나홀로보다는 어울려 모이고 부부가 직접 집을 짓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도시 은퇴자들의 농촌 유입은 선진국에선 일반적인 추세다. 일찍부터 고령화 문제를 겪은 미국, 영국 등에서는 도시 은퇴자들이 시골에서 노후를 보내는 `은퇴자 마을' 등이 여러 형태로 보편화돼 있다. 미국의 경우 은퇴후 농촌 이주를 국가정책적으로 장려하고 있으며, 은퇴 인구의 25% 정도가 농촌지역으로 이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실버 귀촌은 세계적 추세 = 일본에서는 1990년대 중반 은퇴한 사람들의 `정년귀농' 붐이 일어난 이후 도시 은퇴자들의 `취농'이 해마다 늘고 있다. 인구 감소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방자치단체들은 구매력 있는 도시 은퇴자 유치에 발벗고 나선 지 오래다.
농촌에서는 본인의 의사만 있으면 노후의 소일거리든 생계를 위해서든 정년없이 영농에 종사할 수 있다. 자신의 건강상태나 형편 등에 따라 영농규모를 조절할 수 있고 자발적인 은퇴도 언제든지 가능하다.
전문가들은 도시 은퇴자들의 농촌 이주가 인구 감소로 인한 농촌지역의 공동화ㆍ과소화ㆍ피폐화를 막고 농촌사회의 활력을 증진하는 등 지역경제 발전과 도시와 농촌의 균형적 발전에 긍정적인 효과를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농촌은 인구 감소가 구매력 저하, 인프라 유지 곤란, 인구 추가 이탈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겪고 있다.
도시민이 농촌으로 유입되면 이러한 악순환 해소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우선 토지구입 취득세 등 그 지역의 세수와 가구 수입, 소비가 늘고 인구가 늘어나면 공공 서비스나 지역 인프라 등도 확충되게 된다. 전원주택 등이 들어서다 보면 지역 상권이 활성화되고 하다못해 그 지역의 자산으로라도 남는다.
농촌생활은 상대적으로 생활비가 도시보다 적게 든다. 도시 퇴직자들이 연금이나 저축으로 생활비의 상당 부분을 충당할 수 있으며 본인의 의사만 있으면 도시에서와 같은 정년 없이 영농에 종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평균수명과 국민소득의 증가, 웰빙을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의 변화 등으로 도시민의 전원생활 수요는 앞으로 계속 늘어날 것이다. 특히 2010년이면 전체 인구의 16%인 810여만 명에 달하는 베이비붐세대의 퇴직 러시가 시작되고 도시와 농촌을 잇는 도로 교통망과 인터넷 등의 통신망이 확장, 발달되면 그 증가 속도는 빨라질 수밖에 없다.
농촌진흥청 농촌자원개발연구소 윤순덕 박사는 "은퇴후 30여년을 도시에서 마땅한 일자리 없이 연금만 의존해 생활할 경우 국가적으로 인력낭비와 노인복지 재정의 엄청난 손실을 가져올 것"이라면서 "도시 은퇴자의 농촌 이주는 노인에 대한 사회적 부양 부담을 줄여주는 생산적인 노인복지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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