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원뉴스

감자를 캐다

by 늙은여우한마리 2011. 7. 24.

2004년 7월 2일

 주말농장의 농사는 장마철이 경계다. 그 전이 봄농사고, 그 뒤는 가을농사다. 봄농사의 대표 작물인 상추나 쑥갓은 이제 대부분 꽃이 피었다. 대신 토마토와 고추가 실한 열매를 자랑하기 시작했다. 옥수수도 곧 열매를 맺을 것이다. 하지만 장마는 계절의 경계, 그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 농작물에겐 시련의 시기인 것이다. 습한 날씨가 계속되면 농약을 치지 않은 농작물은 병충해에 심각한 타격을 입는다. 총각무와 열무를 뽑아낸 자리에 심은 배추는 이미 벌레들이 너무 많이 갉아먹어 수확이 어려울 것 같다. 토마토는 물론이고, 풋고추도 장마가 휩쓸고 지나가면 무사하리라고 장담하기 어렵다. 맘 편히 가을을 기약할 수 있는 것은 들깨, 고구마와 옥수수 정도다.
농장주는 빨리 감자를 수확하라고 재촉한다. 일주일만 수확을 늦춰도 진창에서 감자를 캐는 사태가 빚어지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벌써 하지가 지났다. 감자는 줄기와 잎이 시들어 쓰러져 있다. 며칠 놔둔다 해도 덩이줄기가 더 커질 것 같지 않다. 우리도 감자를 캐기로 했다. 지난 봄, 감자를 심을 무렵만 해도 감자값이 너무 비쌌다. 큰 것 한알에 1천원 가까이나 했다. 감자탕에 감자가 없어졌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지난해 여름 수해로 강원도 감자밭이 적잖이 망가졌기 때문이다. 이제 감자값은 떨어졌지만, 수확은 값으로 환산할 수 없는 기쁨이다.

아이들만이 아니라, 모처럼 주말농장을 찾아온 도시 출신 친구들도 감자를 수확해보기는 처음인 모양이다. 뿌리에 달린 채 올라오는, 혹은 흙 속에 감춰져 있던 감자알을 보고는 모두 입을 쫙 벌린다. 밑거름으로 퇴비를 조금 주었을 뿐인데, 감자 수확이 적지 않다. 감자는 1평 정도 넓이에 씨감자 12개를 심었다. 씨감자 한쪽은 감자를 3~4쪽으로 나눈 것이니까, 큰 감자로 보면 4개나 심었을까. 그런데, 감자를 캐보니 반 상자가량이나 된다. 거름이 충분해서인지 굵기도 제법이다. 한 친구는 감자만 먹는다고 해도 100평만 심으면 한 식구 1년 먹을 것이 나오는 것 아니냐며 놀란 표정이다. 물론 감자만 먹고 살 수는 없지만, 얘기를 들어보니 이론적으론 그럴 듯도 하다. 정말 대단한 작물이다. 칼로리로 쳐서 단위면적당 수확량이 감자보다 많은 작물은 아마 옥수수밖에 없을 것이다.

감자로 녹말-요오드 실험을 해보면 아이들이 아주 재미있어 한다. 녹말은 요오드를 만나면 화려한 보라색으로 변한다. 감자를 강판에 간 뒤, 약국에서 파는 옥도정기(요오드팅크)를 몇 방울 떨어뜨리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녹말 덩어리인 감자는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감자도 응축된 태양에너지라고 생각하면 참 낯설게 느껴진다. 식물은 태양에너지를 이용해 광합성을 하고, 그 과정에서 포도당을 합성한다. 그 포도당이 다시 녹말로 바뀌고 우리는 그것을 먹는다. 인간이 다른 인간을 착취하지 않는 세상을 꿈꾼 사람들은 가끔 ‘인간도 광합성을 할 수는 없을까’하고 생각했다. 숯불에 감자가 익는, 구수한 냄새를 맡으며 하기에는 조금 무거운 생각이다.

[한겨레] [정남구 기자의 주말농장]